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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바로 표 받고, 바로 들어갔다.

일찍 들어가서 쉬든 면세점 구경을 하던 그게 더 나을 듯해서


이건 비행기 표

 

 


출국심사하고 나니 갑자기 면세점에서 급하게 선물을 사야할 일이 생겼다.

그때부터는 정신이 없다.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적당한 돈에 적당한 선물을 고르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중간중간 내 친구 남은 돈도 써야해서 둘 다 돈에 맞는 물건 찾는다고 정말 면세점을 헤집고 다녔다. 겨우 난 쿠키로 결정~ 친구는 엽서를 샀다.

 

 

 

해당 게이트까지 오니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 우선 확인한 후 그 근처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찾았다.

 

 

레스토랑이 많아서 간단히 샌드위치 먹는다고 들어가서 고르다 보니 난 핫케익에 구아바음료

근데 가격 확인해 보니 이 두개가 한국 돈으로 25,000정도 한다. 헐~~~%EB%86%80%EB%9E%8C%20%EB%B6%84%ED%99%8D%EB%8F%99%EA%B8%80%EC%9D%B4

 

 

이건 내 친구꺼 초코 머핀에 망고주스인데, 이것도 15,000원 정도!!!%EB%95%80%EC%82%90%EC%A7%88%20%EB%82%A8%EC%9E%90%EC%95%84%EA%B8%B0

 

 

보딩 시간이 10분 이상 지나서야 들어가기 시작한다. 바로 이 세관 신고서를 주는데,

별로 산것도 없고, 문제 될만한건 아예 없는데, 내 친구는 아니란다

자기 남친이 산거는 다 적어야한다고 했단다. 아니면 세관 통과를 못한다고 했단다.

그리곤 지가 산거 진짜 다 적는다. 아이고~~~

 

 

이건 기내식~ 난 밥먹야되는 사람이라 돼지고기 덮밥을 골랐다.

 

 

 

이건 내 친구가 선택한 파스타~ 솔직히 이게 더 맛있었다.

 

 

홍콩 올 때 코드 꽂는 곳을 봐서 가는 길에는 핸드폰 충전할려고 맘 먹고 충전기를 챙겼건만, 충전는 10분도 못했다. 바보같이 기억을 못해서 착륙직전에 생각나서 그냥 꽂고 사진만 찍었다.

 

 

이건 내려서 찍은 비행기 사진

 

 

 입국심사하고 가방 찾고, 세관 신고서를 내고 그냥 나오는데,

샀는거 다 적은 내 친구와 아무것도 안적은 나~


그냥 세관 신고서내고 나오니 내 친구 의아해하는 얼굴이다.

그리고 바로 전화 온 남친한테 그 이야기를 한다.

해외 자주 간다는 남친 이야기만 듣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 내 친구


해외 두번갔다온 내 말은 안 믿더니... 에고~~%EB%88%88%EB%AC%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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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시티에 차량통제가 있어서 버스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내려서 이동하는데,

춘절이라 행사를 한다. 악기소리와 사자탈 같은걸로 행사하는데, 사진찍으려니 금방 접고 이동한다.

황색옷을 입은 사람들이 공연하는 사람들 

 

 

이곳에 시간되면 도착해야하는 곳이다. 진한 보라색 관광버스가 우리가 타고 온 버스 

 

 

하버시티 쇼핑센터 무지 크다. 대충 둘러본다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다 보니 선착장이 보인다.

잉??스타페리 타는 곳이다. 우선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다. 보면 또 여기다.

 

쇼핑센터 들어갔다가 확 트인 곳이다 싶으면 여기다. 아놔~~

 

 

 

결국 선착장말고는 다 거기서 거기 같고, 명품매장은 줄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가야하는데, 내 친구도 나도 다리가 아파 서서 기다리는건 못하겠고, 그러다보니 쇼핑생각도 별로 없어서 우선 나와서 걷기 시작하는데, 다리아프다던 내 친구 앉을 만한 곳을 찾으니 없다.


결국 근처 구룡공원이라도 갈까 했는데, 대충 있을 만한 곳을 걸어가니 아무래도 좀 더 걸어가야되는 모양인데, 내친구가 바로 포기를 선언하는 통에, 그럼 이제 나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나의 목적지는 남은 돈을 다 쓰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것이다.


편의점 찾는다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하버시티랑 계속 멀어지니 살짝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시간은 많이 남았고, 지금까지 걸어온게 아까워서 오기로 편의점을 찾기 시작했는데,

후미진 곳에서 드디어 편의점 7일레븐을 찾았다. 근데 거의 다닥붙어서 2개가 있다.

이 C

근데 친구가 저기 빵집인것 같다고 간 곳이 "circle K"인데, 마트인가 보다

편의점보다 싸다. 그래서 이곳에서 남은 돈을 해결하기로 하고, 물건을 고르는데, 돈을 딱 맞추기가 힘들다. 결국 친구한데, 10센트(이렇게 말하느게 맞나?) 빌려서 커피2개를 샀다.

 

 


왔던 길 그대로 가도 되지만 약간의 호기심과 객기(?)로 다른 길을 접어들었다.

처음 가 본 유럽에서도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여기쯤이야 싶어서~~

역시!!!! 버스타는 곳까지 제대로 도착했다. 내 친구가 새삼 놀란다.^^


 저~기 끝에서 부터 걸어 온 곳이다.

 

 

 

도착은 했지만 아직은 일러서 버스가 안 왔다.

결국 하버시티 에르메스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는데,편의점에서 사온 커피 맛이 궁금해서 하나를 먹었는데, 괜찮다. 그리고 남은 PT병은 보관하기 괜찮은 듯해서 그냥 들고 버스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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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에 일어나 눈꼽만 때고 조식 먹으러 갔더니 사람이 너무 많다.

아~~ 어제처럼 일찍 왔어야 했구나%EA%BF%88%EB%BB%91%EA%BF%88%EB%BB%91



이건 판다호텔 조식 티켓

 

 

어젠 이 라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가이드가 맛있다며 못 먹어본 사람들은 먹어보라기에

찾아서 갔더니 줄 서있다. 아이고~ 평소라면 포기했을 것을 친구랑 같이 먹겠다고 기다려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는데, 그릇이 한개밖에 없어서 한개만 들고 가란다. 잉%EC%9A%B8%EC%9D%8C%20%EB%82%A8%EC%9E%90%EC%95%84%EA%B8%B0

15분 가량 걸려서 자리에 가니 사람 많아서 자리 지키고 있던 내 친구 배고프다며 화를 낸다.

불편한 마음으로 어묵만 동강내고 있는데, 사진찍는게 생각나서 찍었다.

맛은 있었다. 하지만 또 가지러 갈 엄두를 못내겠다. 줄이 여전히 장난아니다

 

 


오늘 조식은 처음부터 라면이 목적이었기에 다른 건 그다지.

어제 먹어봤더니 별로라 바로 과일과 요거트

 

 

 

배고프다는 친구 두번째 접시를 채우고 오더니 볶음면이 있기에 어디있냐고 물으니

방금 나와서 따끈하다며 얼른 갖고 오란다. 음~~ 맛있다.

 

 

조식 먹고 다시 객실가서 씻고 준비해서 나왔다.


10시에 모이기로 해서 로비에서 모여 기다리는데, 친구가 내 가방 빵빵해 졌다고, 놀린다.

내가 공항에 도착해서 옷 빼면 부피가 줄꺼라는 말에, 비교해보겠다며 손가락으로

가방의 폭을 재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쇼핑센터 차%EC%BB%A4%ED%94%BC%EC%9E%94와 한약을 판매하는 곳이다.

친구는 부모님 드린다고 발무좀에 좋다는 거 샀다. 홍콩 날씨가 습해서 무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좀약이 효과가 좋단다.


나는 무좀약은 필요없고, 요즘 목이 계속 안좋아서 목에 좋다는거 사니 딴것도 사라고 계속 붙어서 이야기하기에 지쳐서 그것도 달라고 했다. 전칠이라고 했던가??

겨우 끝을 내고 나와서 바로 점심먹으러 갔다.


여기가 점심먹은 이태원식당. 한식인데, 홍콩에서 먹은 한식중에 이집이 제일 나은듯!

 

 

기본적인 반찬이 셋팅되어 있다.

 

 

그리고 불고기(이건 소고기라 내가 못 먹으니 패스), 김치찌개(오~제대로 삭은 김치를 써서 그런지 시큼한 것이 나는 맘에 드는데, 내친구는 못 먹겠단다.)

 

 

그리고 된장찌개도 나왔는데, 난 김치찌개 홀릭으로 된장찌개는 등안시 했고

김치찌개 시다고 못먹겠다는 친구는 이 된장찌개는 또 짜다가 못 먹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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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시안에 입장료가 있다.

우리가 계산한다면 HKD였겠지만 가이드가 단체로 하는거니 미화 $10이었다.



그랜드 캐널을 간 이유는 같이 여행 온 사람들 중에 중학생이 있어서 카지노에 갈 수가 없으니 그랜드 캐널에서 시간을 보내야 된다고 설명도 할 겸. 혹시 카지노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설명을 하기위해서 였다.



그리고 카지노 갈 사람들은 다시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왔다.

 

 

카지노 입구~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단다.

내가 걸리기를 바랬것만!!! 나~~~ 동안이 아니구나%EC%97%89%EC%97%89%20%ED%9A%8C%EC%83%89%EB%8F%99%EA%B8%80%EC%9D%B4

 

 

홍콩 달러로 100을 쓸려고 마카오에 오기전부터 생각을 해서, 가이드 설명할 때 test로 해 볼 사람 앉으라기에 얼른 앉았다. 그리고 홍콩 달러 20을 넣고 시작!!!

운이 좋았던 걸까? Fress game 10번이 연속으로 걸리는 통에 20번을 기계가 알아서 돌아가더니

어느새 3배가 불어났다. %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신나서 했더니 돈 다 잃고, 사람의 심리는 똑같은 건가? 본전 생각에 또 HKD 20을 썼다.

그나마 거기서 끝낸게 다행~ 처음 쓸려고 했던 돈의 반도 안썼으니

그럴려고 맘 먹고 한건 아니고 그랜드 캐널을 볼려니 시간이 없어서 그냥 HKD 40만 쓰고

카지노를 나와야만 했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카지노를 나와 구경을 하는데, 곤돌라가 보인다. 난 건물들 구경한다고 못 봤는데 친구 말로는 물 바닥에 돈이 많이 있다고 그거 줍기만해도 입장료는 나오겠다며 왜 입장료를 받냐는 거다.

 

 

 

저녁시간이 됨에 따라 인공 천장도 어두워진다. 헐~~대단하다

 

 

가이드가 절대~~ 멀리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모이기로 한 시간에 맞추기 힘든게 첫째고, 가이드가 찾아 나서기에도 너무 넓어서 찾기 힘들다는게 두번째인데, 진짜 넓다. 곤돌라 다니는 곳이 쇼핑센터가 많아서 그냥 그렇구나 했더니 안쪽엔 음식점도 많다. 음식도 종류별, 나라별로 있다.

우리나라 비빔밥과 냉면도 본 것 같은데, 도대체 없는게 없다.

 

 

모이기로 한 시간에 스타벅스로 가니 안 온 사람이 많다. 카지노에 있는 남자분들이 아직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부인이 답답해서 먼저 나와 있으면서, 남편분한테 빨리 오라고 전화들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ㅋㅋ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모였지만 그래도 홍콩가는 배를 타러가는데 까지는 시간이 있었나 보다.


관광버스 타고 배타러 이동~~


이건 홍콩으로 가는 배 티켓~역시나 1등석(First 석)

 

 

이건 우리가 타고 갈 배

 

 

저녁 8:30에 출발하는 배를 찍은 사진

 

 

이번에는 콜라와 쿠키를 받았다. 1등석이라 받는 공짜 음식인데, 싶어서 받고는 난 콜라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거의 남긴 내 친구는 배고프다기에 쿠키 다 양보했다.

하지만 그 덕에 난 배멀미를 해야했다. 그냥 자는게 최고인데, 결국 속이 안좋아서 20분은 자야만했다.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갈 때 또 이 입국심사 때 입국~뭐시기가 필요하다.

 

가이드 만나서 관광버스를 올라탔는데, 다 타는데 1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배멀미를 한 사람때문이었다.

나 말고도 이미 버스에 탔을 때부터 뻗어 있던 사람과 대합실 화장실에서 계속 토한 사람 내가 아는 사람만 3명이다. 에효


우리가 묵고 있는 판다호텔에 22:50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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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 호텔에서 버스타고 마카오 타워로 이동~


원래 입장료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우린 패키지라 미화로 $20 을 줬다.



여기가 입구~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가 타워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카오 타워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귀가 멍~ 혹은 아프다는 사람도 있고,

58층에 내려서 내려다보이는 마카오를 찍었다. 비가 계속 조금씩와서 그런지 흐리다.


61층에서 스카이 점프하는 사람이 있어서 구경했다. 

가이드가 보라는 곳을 보니 눈앞에서 사람이 떨어지는게 보인다.

스카이 점프는 바닥까지 레일이 있어서 뛰어내릴 때 그 레일을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꼭 어깨에 긴 봉을 끼워넣고 떨어지는 것 같다.

 

 

 

 

마카오 타워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귀가 멍~ 혹은 아프다는 사람도 있고,

58층에 내려서 내려다보이는 마카오를 찍었다. 비가 계속 조금씩와서 그런지 흐리다.


61층에서 스카이 점프하는 사람이 있어서 구경했다. 

가이드가 보라는 곳을 보니 눈앞에서 사람이 떨어지는게 보인다.

스카이 점프는 바닥까지 레일이 있어서 뛰어내릴 때 그 레일을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 모습이 꼭 어깨에 긴 봉을 끼워넣고 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61층으로 61층에서는 번지점프나 스카이 워크를 하는 곳이고, 마카오 전경도 볼 수 있다. 번지점프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50만원 정도 한단다. 무지 비싸다.


우리가 막 61층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번지점프하는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인~

다들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응원한다고 사진은 못 찍었네^^

 

 

 

61층에서 사진 몇장 찍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이번엔 베네시안 카지노로 이동~~



%ED%81%B4%EB%A1%9C%EB%B2%84베네시안 카지노%ED%81%B4%EB%A1%9C%EB%B2%84


버스로 이동해서 가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날은 흐리고 저녁이 되어가니 버스에서는 그 사진을 찍어도 영~ 별로라 외관사진은 없다.


가이드 따라 걷다보니 기념품 판매하는 곳을 지나 스타벅스 커피숍이 있고 그 앞에 카지노가 있다.

근데, 카지노를 앞에 두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가이드~ 이유가 뭐지??

 

 



여긴!!!! 베네시안의 그랜드 캐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게다가 하늘은 인공이란다. 그린거~~

 

 

 정말 베네치아에 있는듯하다~(나~ 베네치아 가본 사람이야%EC%83%81%EC%96%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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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버스를 타기위해 마카오의 구시가지를 벗어나면서 찍은 사진, 걸어서 이동했다.

 

 

 

처음으로 마카오 도착한 포르투갈인 Jorege Alvares 동상이다.

 

 

 

 Jorege Alvares 동상이 있는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관광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


한국인과 포르투갈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마카오에서 먹는 끼니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현지식으로 먹어보는 걸 권해서 갔다.

안그래도 그럴생각이기도 하고,


스테이크라기에 걱정을 했는데, 돼지고기란다. %EC%A2%8B%EC%95%84 다행이다.

그리고 감자스프가 나오고 특이하게 김치를 준단다.


설명을 듣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셋팅이 다 된 상태라 역시나 먹는거 보면 정신줄을 놓는 사람이다 보니 그냥 감자스프부터 먹었다.


 다들 별로라고 한다. 감자는 밑에 가라앉아 있고, 위에 국물이 있는 그런 모양인데, 내 식성이 국이 있어야 밥을 먹는 아이다 보니 난 괜찮던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남겼다.


감자스프 맛보는 사이에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역시나 다들 얼굴이 별로 좋지 않다.

돼지고기 냄새가 좀 나고 그나마 그 냄새 없애겠다고 후추를 많이 넣었는데, 돼지 누린내와 후추냄새가

섞였다. 나야 소고기를 못먹지 그나마 돼지고기는 좀 먹으니 신경안쓰고 먹으니 내 친구가 자기것도 먹으란다. 맞은편에 세명의 식구도 서로 먹으라며 떠 넘기고, 접시가 비워진건 김치밖에 없었다. 다들 많이도 남겼다.


그런 음식임에도 왜!!! 난 음식사진을 못 찍었냐고, 먹다 남은 접시 사진도 없다.

미쳤지, 완전 정줄을 놨어!!!! 다 먹고 나오니 생각나는건 뭐냐고%EB%86%80%EB%9E%8C%20%EB%B6%84%ED%99%8D%EB%8F%99%EA%B8%80%EC%9D%B4 차라리 나중에 생각이나든가

혼자 머리를 쥐어 뜯으며 그냥 식당의 간판사진이나 찍었다. 에효



한국인과 포르투갈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입구

 

 

여기는 유명한 윈 호텔. 왜 유명하냐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명품매장이 쭉~~말그대로 최고급 명품매장만 있는데, 그게 인천공항 나뉜 게이트 마다 있는 면세점을 한군데 모아 놓은 크기~ 정도

 

 

 

윈 호텔에 로툰다 아트리움에서 하는 금나무쇼인데, 미화로 $5 란다.

근데 꽤 볼만했다.

 

 

금나무쇼 동영상

 

같은 윈 호텔에서 또 유명한 분수쇼!!!  이건 미화로 $10 란다. 솔직히 금나무쇼가 더 낫다.

이날 비가 조금씩와서 비 맞으며 봤다.

 

 

 

분수쇼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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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크 성당을 나와서 맥도날드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면 구.시청이 있다. 

 

 

이건 인자당이라는 복지관 건물 옆에 있는 골목인데, 예뻐서 찍어봤다. 

 

 

이 건물은 인자당 맞은편 건물

 

 

이건 인자당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찍은 사진 

 

 

춘절이라 세나도 광장에 이렇게 뭔가 장식을 해 놓았다.

 

 

이것도 인자당 맞은편인데, 구.시청쪽으로 찍은 거

 

 

이 건물이 앞에서 계속 적었던 인자당(복지관 건물)%EA%BD%83%EC%9E%8E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복지관 건물이란다. 400년도 넘은 건물인데, 이렇게 잘 유지하고 아직도 사용을 하고 있다는데 돈이 그렇게 많다면서도 옛날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라면 10번도 더 새로 짓지 않았을까?


여하튼 그러다보니 아시아에서 복지가 처음 생긴 곳도 바로 이곳 마카오이고, 워낙 카지노 사업으로 돈이 많은 도시라 진짜 복지쪽은 대단하다고 한다. 무진장 부러워서 순간 여기서 살고 싶다~ 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타국민에게 시민권은 안주기로 유명하단다.

 

 

%EA%BD%83%EC%9E%8E세나도 광장%EC%9E%A5%EB%AF%B8%EA%BD%83을 중심으로 유명한 건물들은 다 모여있다.

세나도 광장에 인자당, 구시청, 우체국 그외에도 건물들이 하나같이 오래됐고, 건물만큼이나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바닥이다.



이 건물은 우체국

 

 


건너편 구시청에서 찍은 우체국 사진

 

 

 

이 건물도 세나도 광장에 있는 구시청. 뒤에 새 구청이 있지만

아직도 이 건물에서도 시청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그 유명하다는 바닥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작은 타일을 연결하였고, 색을 달리하여 문양을 만들어놔서 보는 재미도 있다.

사람이 많아서 없는 곳을 골라 찍다보니 사진상으로는 많이 한정적이다.

 

 

 

이 사진은 구시청 건물에서 우체국 반대방향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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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울성당에서 성도미니크성당까지 걸어서 진짜 얼마 안걸린다.

다만 사람이 많아서 지체되는거 말고는... 하여간 여기 마카오의 구시가지는 무지 작긴하다.



성 도미니크 성당 입구~ 사람이 많아서 위로 찍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모습이 이렇다.

 

 

바로 위에 사진에서 정면에 있는것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

 

 

여기도 사람들 가는대로 가면 된다.

 

 

 

위의 사진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이렇게 되어있다.

 

 

여긴 계단으로 올라와 2층에 전시해 놓은 것을 사진찍었다.

인형들이 좀 많았는데, 머리카락도 옛날 모습 그대로라

좀~~ 징그러워서 그 사진은 되도록이면 빼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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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울 성당을 등지고 서면 이렇다. 지금부터 이 길을 가야한다.

사람이 많을꺼라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보니 실감이 난다. 근데, 이건 많은것도 아니란다.

 

 

윗 사진에서 빨간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것도 빨간 건물에 서서 성바울 성당을 찍은 모습이다. 

 

 

요건 성바울 성당만 확대해서 찍은 사진

 

 

이건 첫 사진에서 빨간 건물의 왼쪽에 있는 아이보리 건물

 

 

이제 본격적인 이동~ 성바울 성당에서 성도미니크 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그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오면 갈 수 있다. 

근데 무지 좁은 골목 양쪽에 가게가 있고 지나가는 사람은 무지 많아서 걷다가 갑자기 사진찍는게 안되니 그냥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많이 흔들렸다. 

 

 

 

 

 

이날이 춘절이라 이렇게 길을 빨간색 등 같은걸로 꾸며놨다. 홍콩이나 마카오나 빨간색 좋아하는 건 똑같다~~ 너무 당연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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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떠서 아침에 호텔 객실서 찍은 사진

 

 

 

아침 6:45에 조식먹으러 갔다. 시간은 넉넉해서 좀 더 자도 되지만 오늘도 점심을 11:30에 먹을꺼라고 가이드가 이야기 해서 소화시키고 먹을려면 일찍 먹어야 될듯해서...


이건 조식먹을 때 내야하는 표~

 

 

뷔페식이니 그나마 제일 정상적인 음식샷이다

 

 

 

조식먹고 다시 객실가서 씻고, 외출 준비해서 8:30에 로비에서 모여 버스 타고 출발~


하지만 오늘 일정은 패키지에 빠지지 않는 쇼핑만 간다.

오늘부터 홍콩도 춘절이라고 우리나라 설날처럼 큰 명절이라 차량통제도 많고,

장사안하는 곳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실질적인 관광은 어제 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는 쇼핑센터는 한군데도 없었다.

가능할 때 다 보여준다고 어젠 온전히 관광만 빡빡하게 다 봤단다.


아침부터 TSL이라는 보석가게 갔다.

춘절이라 직원들은 안나오고 세일즈 하는 사람만 나와서 일을 하는데

관광객이 우리만이 아니다 보니 사람 엄청 많다.

근데, 그건 많은 축에도 안든단다.


맘에 들고 돈도 맞으면 사는거지만, 보석류다 보니 금액이 장난아니다. 내 친구가 본 건

PERPECT 10이라는 다이아 10개를 1개처럼 세공한건데,

귀걸이가 이뻐서 보니 150만원 정도 한다. 헐~~%EB%86%80%EB%9E%8C%20%EB%B6%84%ED%99%8D%EB%8F%99%EA%B8%80%EC%9D%B4


딴 건 맘에 안든다는 친구 더 있어봐야 계속 사라는 권유만 받을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두번째는 라텍스 공장

친구는 봐서 배게를 산다더니 영~ 맘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누워보라니 또 누워있는 친구!!! --야야 그럼 억지로라도 사게 된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얼른 데리고 나왔다.


한 거라고는 쇼핑밖에 없건만 점심시간이란다.


여긴 우리가 갔던 점심식당~ 딤섬 전문점이란다.

 

 

 

한 가족 6명이 따로 관광한다고 빠지고 남은 13명 여기 한 테이블에서 밥 먹었다.

 

 

이번엔 중간에 원판 테이블이 있어서 거기에 음식을 놓이면 돌려가면 한사람씩 음식을 집어 가는데,

난 또 반대편이라 음식이 다 먹다 남은 듯하다.

 

 

내 앞접시에 덜어 놓은 음식들~볶음밥, 볶음면(넙덕한것이 별로다),과자같이 바삭한 쌀로 만든 과자??

 

 

이건 어제 아침 죽먹으면서 나완 딤섬과 같은거

 

 

 

이건 연잎밥 

 

그냥 저냥 먹을만 했다.

다른 사람들도 광동식보다는 나은듯 별 말 없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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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에서 유람선 타러 이동을 하는데, 관광버스 타는 줄 알았는데,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린다.

다리 아파 죽겠는데%EC%9A%B8%EC%9D%8C%20%EB%82%A8%EC%9E%90%EC%95%84%EA%B8%B0 그리고 2번 2층버스가 와서 탔다. 계산은 가이드가 하고~

 

 

버스에 내리니 낭만의 거리란다.

새벽에 본 모습이랑 비슷하다 했더니 스타의 거리랑 붙어 있다.

새벽에 추워서 되돌아 가지 않았다면 낭만의 거리까지 왔을꺼다...

이럴땐 자유여행이 좋지~

패키지는 버스타고 내리고 밖에 안하니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있나~%EC%8B%9C%EB%AC%B4%EB%A3%A9%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낭만의 거리에서 사진 좀 찍고 바로 유람선타러 goGO


유람선은 사진 못찍었다.

내가 다리가 아픈것도 있었지만 배멀미를 걱정하는 친구랑 이야기한다고...


그래도 배를 타자마자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는데! 거의 타자마자 출발한다.

그리고 2개의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5분정도 밖에 안타는 듯!!!

 

 

 

유람선 타고 건너편에 내려서 찍은 사진~

 

드디어 호텔로 간다. 시간이 8시도 안되었다. 넘 일찍 숙소로 가는거 아니냐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이틀동안 거의 못자고, 씻지못한 찝찝함!!!!!

거기에 바닷바람 쐤더니 머리꼴이 장난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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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우리가 묵었던 판다호텔 

 

친구와 내가 썼던 2407호 객실~~

 

 

 

너무 피곤해서 짐을 다 퍼트려 놓고, 내가 먼저 씻고 친구가 씻는 동안 생각나서 찍은 객실 사진인데, 도저히 치울 엄두가 안나서 그냥 있는 그대로%EC%9D%8C%ED%9D%89%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잠자리 들기 전에 생각났다. 창문으로도 야경을 볼 수 있겠다 싶어 찍었는데,

화장대에 있던 핸드폰 갖고와서 사진찍는 동안 잠든 내 친구!!!

어떻게 저렇게 빨리 잘 수 있는지 나는 부러울 뿐이고,,,%EA%BF%88%EB%BB%91%EA%BF%88%EB%BB%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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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다기에 내렸다. 가이드 따라 걷다보니 스탠리거리라고 이렇게 팻말이 있다.

보고 기계적으로 사진찍었다.%EA%B9%9C%EC%B0%8D

 

 

팻말을 등지고 사진찍으면 이런 모습~~

 

자유시간을 줘서 내가 앞서서 걷고 있으니 친구가 약국가야한단다.

뒤돌아서니 왓슨(?)약국이 있고 거기에 이미 들어선 친구 오라고 손짓한다.


스트랩실을 사야한다고, 찾다보니 종류가 좀 있다. 친구가 알아서 사고,

난 잠도 덜 깼고, 멍~하니 있으니 친구가 나보고 치약사란다.


"치약??"


하니 미백에 좋아서 유명한 치약있다기에 아무생각없이 사는데 잔돈이 싫어서 2개 샀다.


나중에 생각났다. 내가 홍콩간다고 하니 장년 5월에 갔다온 친구가 치약을 너무 많이 사서 아직도 쓰고 있다고 한게 아무래도 내가 산 치약인듯!!!!%EA%BF%88%EB%BB%91%EA%BF%88%EB%BB%91


그리고 본격적인 쇼핑~~~할려고 했는데,

구경 좀 하니 시간이 없어서 결국 아이쇼핑 되어 버렸다. 

 

 

 

급하게 걸어 가니 가이드가 말한 해변이 나온다.

 이 해변 보겠다고 마켓은 구경도 거의 못하고%EC%8B%9C%EB%AC%B4%EB%A3%A9%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이 해변도 사진만 찍고 뒤돌아 빠른 발재간으로 돌아왔다.

 

 

 

 

해변을 따라 이국적인 음식점들이 있다던데, 골목 지나가니 바로 피자냄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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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버스 타고 이동하는데, 저녁%ED%8F%AC%ED%81%AC%EC%8A%A4%ED%91%BC을 먹으러 간단다. 5시다. 역시 저녁도 빠르다.

관동식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좀 느끼할꺼라고 이야기한다.

다들 걱정이 한가득~~


나 역시 느낀한건 별로인데, 그래도 소고기만 아니면 다행이겠다 생각뿐이다.



여긴 식당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 식당입구가 보인다.

 

 

 

여기도 그릇이 식탁에 놓이자마자 10명 남짓한 사람들의 손이 부산해서

 온전한 상태의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점씩 나의 앞접시에 옮긴다음 사진을 찍었다.



뼈에 껍질만 있는 것도 있었고, 오리고기도 나왔고,

하나는 계란인지 유부인지 알수없는 것도, 소지시 같은 것도 있었다. 

 

 

배추볶음도 나오고, 뭔 고긴지 이젠 모르겠다.

 

 

청경채가 나왔는데 씁다. 버섯은 맛있었고, 생선도 담백~

하지만 호박과 오징어 볶음이 내입에는 최고 특히 호박!!

 

 

요건 다 먹은 후 조용할 때 찍었다. 청경채의 왼쪽에 많이 남은게

유부인지 계란인지에 대한 말이 많았으나 맛은 없었다.

 

다들 입맛에 별로란다. 난 대체로 괜찮아서 너무 잘 먹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란다.

"여기서 살아도 되겠네~" " 입맛이 맞나보네~"한다.


음~~그래서 배 터지게 먹었어요^^

오늘 계속 밥먹는 내내 적당히가 안된다.%EB%B0%95%EC%9E%A5%EB%8C%80%EC%86%8C%20%EB%B6%84%ED%99%8D%EB%8F%99%EA%B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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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먹고 이동~~~지친다.


야시장으로 간단다.

 너무 가고싶었던 야시장이긴 하나 난 야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잔뜩 먹을려고 했는데,

 방금 배터지게 저녁을 먹은지라 도저히 더 먹을수가 없다.%EB%88%88%EB%AC%BC


아놔~~ 오늘 왜이러냐!!!!


여기도 역시 홍콩 관광지라면 빠지지 않는 몽콕야시장인데, 여인가라고도 한단다.

여긴 대구 시내정도? 그래서 돌아다니는데,

시간은 얼마 안걸리지만 자세히 보면 시간이 부족하긴하다. 

 

 

여기 망고주스가 괜찮다고 한다.

 

 

 

 

망고주스 유명한 곳 바로 옆에 있는 환전소인데, 환전수수료가 싸단다. 가이드 말이~~

 

 

배는 불러도 망고주스는 무조건 맛 봐야지 해서 한잔만 샀다. 친구랑 나눠서 먹었다.

내 친구 손다쳤어%EC%97%89%EC%97%89%20%EB%8F%99%EA%B8%80%EC%9D%B4 알록달록 밴드 눈에 띄는구나~~

 

 

여긴 진짜 시장이다. 과일을 판다.

하지만 여기서 본 과일은 이미 헐리우드 거리를 걷다가 근처 시장에서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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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급하게 결정된 홍콩여행이라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오는 방법이 힘들었다.


우선 인천공항 리무진%EB%B2%84%EC%8A%A4%EC%A0%95%EB%A5%98%EC%9E%A5%ED%91%9C%EC%8B%9C은 15:50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바로 심야버스%EB%B2%84%EC%8A%A4%EC%A0%95%EB%A5%98%EC%9E%A5%ED%91%9C%EC%8B%9C라 시간이 안된다.

기차를 알아보니 역시 명절이라 마감이고,

하는 수 없이 대구공항을 알아봤으나 그것도 하루에 2대 밖에 없고, 시간이 안 맞는다.


같이 가는 친구가 다시 알아보더니 KTX 특실은 있다기에 결국 그걸로 예매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환전은 바로 전날하고 그 와중에 나는 상의 잠옷 만든다고 정신없다.

그래서 내가 홍콩여행가는 걸 아는 사람이 4명정도??


KTX타고 친구는 바로 자고, 난 통화하고 일정보고 그냥 시간 때우면서,,, 사진찍을 생각을 안했다.

언제 또 특실 타 본다고 바보같이... 그건 여행취급도 안한것인지...


KTX내려서 인천공항 도착했다고 그제서야 디카%ED%95%84%EB%A6%84%EC%B9%B4%EB%A9%94%EB%9D%BC꺼내서 사진찍는다.

 

 

 

 

 

유럽여행 때 도착했을 때 내가 탔던 리무진 버스정류장이 보여서 사진찍었다.

 

 

모이는 곳을 확인하고 배고파서 바로 저녁을 먹어야되는데,

기내식이 있을 것이니 간단하게 먹자고 가까운 햄버거%ED%96%84%EB%B2%84%EA%B1%B0집으로 GO GO


소고기 못먹는 나는 치킨,

친구는 소고기 선택하면서 너~~매운거 못 먹으면서 왜 칠리%EA%B3%A0%EC%B6%94를 선택했니??

아니나 다를까 맵단다. 칠리 묻은 윗빵만 바꿔서 먹었다. ㅋㅋ%EB%AC%B4%ED%91%9C%EC%A0%95%20%EB%82%A8%EC%9E%90%EC%95%84%EA%B8%B0

 

 

바로 패키지 여행 모이는 곳에서 받을꺼 받아 캐리어 가방은 부치고,

늦은 시간이라 면세점 거의 안하겠지만 그래도 들어갔다.

 

 

 

 

3시간 정도 시간이 되어 면세점을 돌아다니는데, 처음부터 난 선글라스%EB%8A%91%EB%8C%80 한개만 살려고 했는데,

선글라스 볼 수 있는 곳이 한군데밖에 없다. 이것저것 써봐도 나한테 어울리는게 없다. 포기..

대신에 어제 아침에 아이라이너 펜슬이 부러져서 못쓰게 됐다. 아이라이너 볼려니 늦은 시간이라

브랜드와 제품을 정확하게 알아오란다. 아놔~~%EB%86%80%EB%9E%8C%20%EB%B6%84%ED%99%8D%EB%8F%99%EA%B8%80%EC%9D%B4


난 뭐든 직접 봐야하는 성격이라우...그래서 온라인쇼핑을 안한지 오래됐다고요...

핸드폰으로 막 찾고, 전화로 물어보고... 진짜~~~

어찌어찌 휩쓸려서 바비브라운꺼 샀다.

내꺼 사는거 보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며 내 친구 파운데이션 지르고,

그래서 나도 생각났다. 트윈케익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또 인터넷으로 알아보다가 한개를 샀는데, 그것도 바비브라운꺼다.

같이 샀으면 할인 많이 받고 선불 만원도 받을 수 있었는데,,,짜증%EC%8B%9C%EB%AC%B4%EB%A3%A9%20%EB%85%B8%EB%9E%80%EB%8F%99%EA%B8%80%EC%9D%B4

나처럼 정신없게 지르지 마시길...계획을 딱!!! 세우고~~~늦은 시간에 면세점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친구 향수(내가 항상 노래부르는 불가리꺼 내 친구도 잘 아는 거라)샀다.


입안이 찝찝해서 양치하고 바로 비행기타러 갔다.~~GO

 

 

 

유럽여행 때 보다 자리가 넓다. 다행이다. 이륙하고 얼마 안되어 기내식%ED%8F%AC%ED%81%AC%EC%8A%A4%ED%91%BC 나온다.

난 하여간 먹는것만 보면 정신을 못차린다. 너무 본능에 충실하다는 거지...

또 먹다가 생각나서 밑에 사진을 찍었다. 쿠키%EA%B3%BC%EC%9E%90와 머핀은 다 먹은 상태다%EC%9A%B8%EC%9D%8C%20%EB%82%A8%EC%9E%90%EC%95%84%EA%B8%B0

 

창 밖은 진짜 하나도 안보인다. 새까맣다.

포기하고 잘려니 너무 건조해서 잠도 안온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서 휴지%EB%91%90%EB%A3%A8%EB%A7%90%EC%9D%B4%ED%9C%B4%EC%A7%80에 물을 흠뻑 적셔서 얼굴에 얹고 잤는데,

도착할 때쯤 거의 다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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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가자는대로 왔는데, 그래도 처음 일정에서 바뀌지 않고 온건 다행이다 싶다.

주차장에 안내도가 있는데, 넓다...

 

 

 

티켓부터 사고 입장

 

 

 

들어서자마자 말이 끄는 마차가 있다. 가족 4인 기준에 1만원이란다..사실 주차장에서 본 안내도를 보고 넓다고 생각했기에 싸다 싶어 그대로 탔다. 아저씨가 설명을 참 재밌게 한다. 그래도 구경하면서 설명듣는데, 설명이 빨라서 따라 갈수가없다.

여하튼 아저씨가 한 말중에 여기서 찍은 영화를 자기도 모른다는 거다. 왜 그러냐면, 외우면 또 찍고 외우면 또 찍어서 포기했다고, 그만큼 여기에서 많은 작품들이 촬영된다는 말이겠지

 

 

 

마차에서 내리고 보니 요녀석 참!! 착하다. 말도 잘듣고, 포즈도 취할줄 알고, 기특해서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들 '아이고 똑똑하다~' 한다.

 

 

 

들어서면 이렇게 전차부터 보인다. 그리고 운영도 한단다. 무료로.. 다만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점심시간 조금 전에 도착했는데, 오전꺼 끝나고 2:30이 있다. 설마 우리가 그 시간까지 있겠냐? 그냥 포기하자!!!

 

 

 

나~~~~ 여기 안다.... 경성스캔들에서 나온곳이다.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에서 여기가 몇번나왔지~~ 오 신기해

 

 

여기도 경성스캔들에서 기방으로 나왔던 곳이다. 우와~~~

 

 

조선시대 건물도 있고, 일본식의 건물에 총독부건물 최초 호텔과 백화점, 원구단.극장에 클럽까지.. 우와 진짜 신기하다.

 

 

 여긴 총독부 건물로 각시탈에 자주 나오는 곳이지... 신기방기

 

 

 

 

여긴 경성역!!!

 

 

 

 

 원구단

 

 

극장

 

 

 

 

 

 

 

분수 뒤에 문이 있어서 들어가봤더니 별거 없더라는....

 

 

각 작품마다 주연배우들의 손도장도 있다. 이건 포화속으로

 

 

전우치와 모던보이

 

 

에덴의 동쪽

 

 

 

경성역과 항상 같이 나오는 기차~~실제로를 경성역과는 좀 떨어져 있다는...

 

 

여긴 60 70년 시대의 서울

 

 

 

 

 

구경다 하고 나니 2:10이다. 이모에게 말해서 그냥 전차 타고 나가기로 결정... 그래서 기다렸다가 탔다. 무지 짧은 거리를 가는데, 속도도 무지 느리지만 진짜 신기했다. 지나갈때마다 이걸 타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본다. 아마 돈 내고 타는 걸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닌 줄 알았던 어린남자애 아버지!!! 아들안고 뛰어서 뒷문으로 탔다는... 느려서 가능한데... 다른사람들도 타지... 잼있는데,,,ㅋㅋ

 

우리를 찍는 사람들을 보며서 드는 생각 내려서 전자 움직이는것도 찍어야하는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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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화려하다. 역시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도 많고, 여기저기 사진찍는다고 다들 셔트 누르고 있다.

우리도 얼른 차에서 내리니 햇볕이 강렬해 모자와 양산을 꺼내서 쓰는데,,, 사진찍을려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결국 그냥 사진만 찍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제대로 찍기가 힘들다.

 

심지어 자기 사진찍고 그자라에서 사진 확인한다고 뒷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질 않나...

그래서 조금 지나니 다들 사진찍는게 시큰둥하다. 아침을 굴정식으로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어서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빼대기죽은 먹어야 된다고 4명이 2그릇만 시켰는데,,, 더 시키면 어쩔뻔 했니... 이것도 별로

 

그리곤 더 사진찍을 생각이 없어진다.

 

 

 

 

 

 

 

 

 

 

여긴 딱 봐도 알겠다. 착한남자 마지막회에 나오는 곳!!!! 친구가 이 사진 보여줬을때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내가 찍어서 느낀 점은.. 음!! 이곳이 통영의 동피랑마을이구나... 즉! 통영까지 온 내가 대단하다라는 것만 느껴진다. 왜냐~~송중기가 지금 여기 없기때문에!!!!!

 

 

동피랑마을이 높은데 있는건 주위를 보면 안다. 게다가 바다가 바로 옆에 있다... 사실 내가 운전을 안하니... 바다가 가까이 있어도 못느낀다. 라기보다 관심이 없는거겠지?? 정신이 없기도 하지 계속 차안에서 이동한다고 나도 힘들었다고~~

 

여하튼 사진찍는데, 이상한게 있어서 줌으로 땡겼더니 거북선이 보인다. 이모에게 말하니 진짜다.... 그래서 동네 할머니한테 물어보니 입장료있단다. 그래도 가보자고 해서 가봤더니 별 다를게 없어 보인다.

 

 

 

 

5년전쯤에 와본 사촌언니가 많이 바뀌었다 해도 나야 안와봤으니 모르지 했는데, 겨울왕국보니 최근에 그려진 건줄은 알겠다. 안되어도 올 초에는 그렸다는 말이겠지

여기서 많이 정체가 되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아이들이 엘사 그리고 안나와 사진찍겠다고...

 

 

 

 

 

이 배 그림 바로 밑에 있는 날개 그림에 다들 등대고 사진찍는다고 또 정체현상... 사촌언니가 더 가야 있었는데, 이것도 바뀌었다고 했는데, 사실 차타고 이동하니 원래 자리에도 있다. 근데,, 다들 또 귀찮다고 패스....난 찍고싶었다고엉엉 동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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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을 보기위해 이동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가 표시되어 있는거 보고 또 즉흥적으로 움직인다... 난 그런거 관심없는데,,, 가 봤더니 의외로 잘 해놓기는 했다. 생가 옆에 기록 전시관에 대통령 출마 당시의 전단지들도 있고, 옛날로 돌아간 기분... 

 

다들 사진찍는다고 정신이 없는데, 난 그다지 찍을 만한게 없어서 안찍었다. 내 사진은 몇개 있지만 워낙 얼굴팔리는 것을 싫어하는 지라 패스~~

 

그리고 그 앞에서 쥐표샀다. 저녁에 맥주 안주로 먹는다고.^^

 

 

 

그리고 바람의 언덕에 도착!!!

오~~ 진짜 바람이 엄청 부는 것이 좋기는 한데, 땀을 흘린 상태에서 바람을 맞으니 끈적끈적해 졌다.

 

여긴 계단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

 

 

비가 왔다갔다 하더니 전체적으로 좀 흐리긴 해도 바다는 바다다.... 좋아신남 동글이

 

 

 

이게 제일 유명하겠지.... 오~~ 그러고 보니 아는 사람도 같이 찍혀있네... ㅋㅋ

 

 

그리곤 또 바다 사진~~ 난 바다가 좋아... 멀리서 보는 바다가꿈뻑꿈뻑 가까이서는 비린내도 그렇고,,, 무서버서

그래도 한 여름에 해수욕장 갈일 있음 고민안하고 가겠지.... 그냥 바다보러....

 

 

 

이 언덕까지는 귀찮다고 안가겠다고 우기는 이모와 사촌동생... 또 귀차니즘 발동했구나,,, 그래도 다들 여기로 가니 안 갈수는 없는지 따라 나선다.... 그럴꺼 그냥 가지... 인상쓰게 만들고....음흉 파란동글이

 

 

이제 저녁이라 해지는 모습도 좋다.... 그래서 또 찍어봤는데.. 역시 사진의 한계... 그 벅찬 마음을 담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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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도착해 갈만한 곳을 찾는다. 처음부터 즉흥적인 여행이라. 통영가기위해 출발했는데, 부산으로 가질 않나... 그러니 계획을 가면서 잡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바람의 언덕을 가는 길이었으나 거제를 찾으니 포로수용소가 나왔고, 사촌동생의 적극적인 건의에 가기로 했는데, 바람의 언덕을 먼저 갔다가는 포로수용소가 끝나는 시간이라 급하게 도착.

 

6시까지 하는데, 5시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어른 4,500원이기에 비싸다 싶었는데,,, 헐~~ 이렇게 넓을 줄이야.

시간은 없고, 정말 뛰다시피해서 구경을 했다. 우선 결론을 말하자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예정없이 왔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니고 계획을 하고 왔더라도 이곳의 나의 의견을 빠졌을테니... 원래 이렇게 슬픈 역사는 좋아하질 않아서...

 

 

설치배경(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거제도를 포로수용소 적합 지역으로 판단한 이유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2년 6월 9일에 열린 미 하원의 청문회이다. 이 청문회는 포로수용소장 돗드장군의 피랍사건과 관련하여 거제도 포로수용문제 전반에 걸친 사실 확인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육군성장관(Secretary of the Army) 페이스(Hon. Frank Pace, Jr.)와 육군참모총장 콜린스 대장(Gen. J. Lawton Collins, Chief of Staff, United States Army)이였다. 거제도를 포로수용소 장소로 선택한 주요 이유라고 두 사람이 밝힌 내용은
①(섬이기 때문에) 포로 관리에 최소의 인력과 경비가 소요될 것이다.
②급수가 용이하다.
③포로들이 먹을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장소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특히 급수문제는 중요한 요소로서 고려되었는데, 근해에 있는 여러 섬 중에서 거제도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 공급이 가능한 섬을 찾기 어려웠다. 제주도에는 이미 많은 피란민이 들어차 있는데다가 그들이 사용할 물도 충분치 않아서 우물을 더 파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포로의 관리(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전쟁 전기간을 통하여 북한 및 중공군 포로에 대한 한국군 및 유엔군측의 관리 및 대우의 실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모든 수용소의 위치도 공개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백색 또는 황색으로 PW표지가 되어 있어서 수용소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가 이 표지를 관측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산군측의 포로 관리의 실상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현상이었다.

유엔군 관할하의 모든 포로수용소들은 1949년 제네바협약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으며, 그 실태가 국제적십자사 대표들에 의해 수시로 점검되고 있었다. 그리고 서방 언론들에 의해 언제든지 확인이 되고 지상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전시라고 하는 악조건하에서도 유엔군측이 국제법 및 관례를 따라 포로를 관리하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했다.

수용소의 질서는 포로자치제에 맡겨져 있었으므로 유엔군 수용소는 낙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장에서는 생각해볼 수도 없었던 숙사에서 하루 세끼의 식사를 제공받고, 하는 일이라고는 형식적인 작업이 고작이었다.
전장에서처럼 죽이고 죽는 전투도 없고, 발이 부르트도록 강행군을 하는 일도 없었으며 잠을 못자면서 경계근무를 설 필요도 없었다. 경비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든든하게 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겨울 추위가 와도 동상에 걸릴 염려가 없었다.포로수용소 내에서의 포로들의 일과는 통상 다음과 같았다.

오전 5시 30분
오전 6시 30분 전원 집합 점호
오전 7시 오전 일과 시작
오전 11시 30분 점심식사
오후 1시 작업 인원 집합, 오후 일과
오후 4시 일과 종료
오후 5시 저녁 식사
오후 8시 점호 후 취침

 

 

거제도로 옮겨진 포로문제(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부산에 있던 포로가 거제도로 옮겨옴에 따라서 포로문제도 자연히 거제도로 옮겨오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몇 개월간은 비교적 평온했다. 이 기간은 수용소 부지 정리 및 시설의 확장, 포로 배치작업 등으로 분주한 때였다. 가끔 한국 경비병과 북한 포로 사이에 사소한 시비로 인해서 충돌이 발생하기는 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 이 시기에 있었던 싸움이나 저항은 집단적, 사상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 감정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대부분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들이었다.
이때 쌍방이 다툼을 벌이게 되었던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군 경비병보다 북한 포로에 대한 대우가 더 좋다는 사실이었다. 포로 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미군 당국은 포로의 대우와 인권 존중이라는 제네바협약을 준수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그들에게 더 극진한 대우를 하였다. 그래서 피복이나 급식면에서 경비병보다도 오히려 포로들이 더 낫다는 사실이 한국군 경비병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포로들은 북한 인민군 군가를 부르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선동적인 연설을 하고 미국인을 격렬히 증오하는 구호를 외쳐대는 등의 저항 행동을 했다. 그와 함께 1951년 3월에 만도 여섯 번의 단식투쟁 및 연좌시위와 네 번의 자해사건이 발생했다.제네바협약은 포로의 인권을 보호하는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 포로들이 조직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이때문에 포로들의 저항 활동이 격렬해져도 그것을 저지·규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었다. 이렇게 볼 때 거제도는 이미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의 표적이 될 소지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로가 소요나 폭동을 일으키게 되면 제일 먼저 곤욕을 치르는 것은 한국군 경비병들이었다. 이들은 소수의 인원으로써 엄청나게 많은 포로들을 경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지휘를 받고 있어서 사실상 포로 관리에 대한 실권이 없다 는 것도 행동의 제약 요건이 되었다.경비 근무중에 한국군 경비병과 포로가 충돌해도 미군측에서는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던지, 아니면 휴전회담이 곧 시작되고 멀지 않아 전쟁이 끝날 것이므로 가만이 두면 문제 가 수그러들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수용소장들이 심각한 수난을 겪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6·25전쟁에서 포로수용소장직을 맡은 사람들의 심리가 위축되어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항운동의 시작(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거제도를 소요와 폭동으로 얼룩지게 했던 포로들의 단체 저항 움직임은 부산으로부터 포로를 수송하던 마지막 단계인 1951년 6월 부터 서서히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로들이 새로운 수용소에 도착한 이 시기에 북한군 장교 포로들이 들어 있는 제7구역의 제72소구역에서 제일 먼저 문제가 발생했다.
6월 18일에 제72소구역에서 위생 검사와 급식 문제가 발단이 되어 포로들이 식사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켰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깡통을 두드리며 돌을 던지면서 날뛰었다. 식사 거부와 소동은 다음날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장교 포로인 그들은 인근에 있는 "모든 구역의 통제권"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수용소 당국이 그것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포로들은 식사를 치우기 위해 수용소안으로 들어간 작업반을 향해 돌을 던져서 미군 장교와 사병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 계속해서 포로들이 함성을 지르며 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으므로, 이에 대항해서 경비병들이 사격을 하였다. 사격을 받게 되자 정문으로 쇄도하던 포로들은 천막으로 되돌아갔고 결국 노래와 투석도 그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3명의 포로가 죽었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거제도에서 포로들이 일으킨 저항운동이 단체의 움직임으로 나타나게 된 첫 번째 사례였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이것이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의 서곡이 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바로 그 다음달인 7월에 휴전회담이 열리자 수용소 내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조만간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포로송환이 현실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많은 포로들이 북한 또는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거부하는 뜻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포로들 간에 친공과 반공의 편갈림이 생기면서 양자 간의 마찰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용소 근처의 민간인이나 피란민을 돈으로 매수하여 외부의 게릴라를 통해 북한과 연락을 취하고 전언(傳言)이나 투석(投石), 시호통신(視互通信)등으로 타지역과 연락하여 암암리에 조직을 만들고 정보를 교환하였다. 또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도 시비거리나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서 저항의 빌미로 만들었다. 이처럼 친공포로의 조직이 위협적인 세력으로 형성되자 한편 으로 반공포로들도 단결하게 됨으로써 양자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반공계 포로는 조직면에서 친공계 포로들을 뒤따라가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친공포로의 활동이 처음부터 의도적이고 계획적이었던 반면, 반공포로의 활동은 자기 보호를 위한 자구책의 방편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이렇게 해서 수용소 내부는 소요와 난투극의 마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밤에는 경비병의 순찰이 없는 것을 기회로 해서 살인, 구타 행위가 빈발하여 희생자가 속출했으나 수용소 당국은 모른 척하였다. 사법권이 없는 수용소장으로서는 증거가 분명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사소한 일로 포로들이 시위와 난동을 부리는 행동은 1951년 7월에 일어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제2군수사령부는 여름 제복으로 포로들에게 붉은 색상의 짧은 소매 상의와 짧은 바지 한 벌씩을 지급했는데, 유독 북한군 포로들은 그 색상이 일본을 의미한다 하여 입기를 거부하여 옷뭉치를 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경비병들의 위협사격으로 3명의 포로가 사망하였다. 또 제65수용소의 포로들과 한국군 경비병들 간에 충돌이 벌어져서 포로 3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51년 후기에 유엔군사령부가 처음으로 북한 포로 첩보원들을 체포하였는데, 그들은 포로수용소 안에서 소동과 폭동을 선동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으며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진술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이런 실정을 보고 받고 현지를 시찰한 밴플리트 장군은 포로수용소 경비병력을 더 보내도록 해서, 1951년 말에는 9,500명이나 되는 관리 요원이 거제도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수용소에서 요구했던 규모보다는 6천명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경비 태세는 어느 정도 좋아졌으나 구역 내에서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투쟁은 계속 가열되기만 했다. 어느 한 편이 상대에게 전면 항복하지 않는 한 구역 내의 패권 싸움, 예를 들면 구타, 사형(私刑), 인민재판과 이것들을 제지하거나 보복하려고 하는 폭력 행위 등은 그칠 수가 없었다. 급기야 1951년 12월 18일에는 투석전이 일어나서 14명의 사망자와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흥분된 분위기는 포로심사 문제가 대두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해방운동과 특별공작대(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포로들이 거제도로 이송된 후 포로수용소가 제자리를 잡은 51년 4월부터 친공포로들은 수용소 내에 소위 [해방동맹] (일명 [용광로])이라는 비밀 조직체를 만들어 그 본부를 제77수용소에다 두고 각 수용소 단위로 지부를 두었다. 그리고 친공포로들의 모든 행동은 해방동맹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좌우되었다. 해방동맹의 내부 조직으로는 군사행동부, 정치보위부, 내무부, 민청행동결사대, 당간부학교, 인민재판소 등을 편성하여 마치 포로로 구성된 소정부를 형성한 것과 같았다.

그런데 이런 해방동맹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움직인 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해방동맹을 조직하였을 것으로 믿어지는 자는 북한 공산군 전사 출신이라고 알려진 홍철인데 그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배후 인물임엔 틀림없다는 주장이 있다. 홍 외에 또 한 사람으로 이학구 총좌가 있었다. 그는 남침 당시 북한 인민군 제2군단 작전참모였고, 낙동강전선에서는 제13사단 참모장으로서 1950년 9월 21일 다부동에서 미 제1기병사단으로 투항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포로 중의 최고위 계급자로서 해방동맹을 조직한 실질적 인물은 아니더라도 홍철과 더불어 그 조직을 조종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었다.

어쨌든 계급이 높았던 만큼 이학구는 표면상으로는 포로의 대표 행세를 하였다. 그가 정체 불명의 인물과 더불어 전수용소의 통솔권을 장악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판문점 회담이 절정에 이르자 그는 전 거제도 수용소의 이른바 대열 강화 사업에 착수, 비밀리에 각 수용소 간의 통신망을 조직하여 각종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또 그는 수용소 당국에서 요구하는 포로 명부 작성 제출도 거부케 하고 송환 분류 심사에도 응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1951년 5월에는 제92구역에 북조선 노동당 거제도 지부가 조직되었고, 각 구역에도 연락소가 조직되었다.이들은 '생명을 희생하여 당을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는 선언서를 채택하고 저항활동을 펼쳤다. 친공포로들의 표면적인 최초 행동은 수용소 내에서 적기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수용소 당국에서 하등의 제재가 없자 그들은 더욱 대담해져서 인공기를 게양하고 어느새 인민군 복장까지 만들어 입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급품을 팔아서 광목을 구입하여 큰 글씨로 『민족반역자 이승만을 때려 죽여라!』『미제국주의 침략자를 타도하자!』 등의 플래카드를 우리말과 영문으로 써서 철조망에 내걸었다.

이렇게까지 수용소 안이 온통 친공포로들의 광란장소로 변하여도 수용소를 관리하는 미군 당국은 그냥 보고만 있는 자세였다. 수용소장은 후방기지 사령관(수용소 관할의 직속 상급 사령관)이나 또는 그 이상의 지휘 계통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지시도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로서는 포로를 제약할 수 있는 방도가 달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고급 사령부의 이러한 무관심은 휴전이 성립되는대로 포로들을 송환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건의 초기에 신경을 써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국군의 경비 책임자나 감시병들의 분노는 말할 수 없었지만 포로 관리에 대한 권한이 없고 경비 담당에 지나지 않아 별 도리가 없었다. 만약 한국군에 관리권이 있었다면 친공포로들이 그렇게 날뛰지 못했을 것이며, 무법천지같은 혼란 상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한국군이나 유엔군의 포로들이 북한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유엔군 당국은 알고 있었다. 만일 유엔군측도 공산군측의 수법 그대로 친공포로를 다루었더라면, 그들이 감히 포로가 된 나라의 수용소에서 자기 나라의 기를 게양하고 자기 나라 노래를 공공연히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이러한 때, 북한측에서는 [특별공작대]라는 특수 조직체를 만들어 암약하기 시작했다. 북한군 총사령부에 소속된 이 조직체의 임무는 전선에서 자진 투항하여 포로의 신분으로 수용소에 들어가 특별 지도 사명을 수행할 공작대원을 훈련시키는 한편, 포로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 공작대는 사실상 남일에 의해 지휘되었는데, 그는 북한 공산군내 정치보위부의 책임자로서 이런 일은 그의 소관이었다. 남일은 휴전회담이 개시되자 직접 특별공작대를 편성하고 2개월에 걸쳐 각종 훈련과 교육을 시킨 다음 조직적으로 전선을 통해 수용소에 침투시켰다.
 
한편 수용소의 외부에서 암약하는 남녀 공작대원들은 피란민으로 가장, 남하한 다음에 간호원 등으로 포로수용소 병원에 취직하거나 수용소 부근에서 적당한 장사를 하면서 내외의 연락을 유지하는 일을 담당했다. 수용소 내에 침투한 공작대원들은 지령에 의해 먼저 각 단위 수용소 내에 세포조 직위원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수용소 내에 위계 체 계를 세우기 위해 장교들을 세포 조직망의 책임자로 배치시켰 다. 계급이 지배력을 갖도록 함으로써 목적을 달성코자 했던 것인데 이학구 총좌가 표면적으로 포로의 대표가 된 것은 이런 데서 연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별 공작대원들의 또다른 임무는 각 포로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즉, 포로들이 포로가 된 동기를 조사하고 수용소에 들어온 후 변절한 자, 자발적 이탈자, 밀고의 혐의가 있는 자 등을 가려내는 일이었다.

공작대 활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통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의 통신 구조는 ①각 수용소 내의 연락망, ②수용소측 지휘부에서 수용소 내의 일반 포로 및 공작대원들에게 연결되는 연락망, ③수용소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연락망의 3원적(三元的)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포로들의 통신본부는 제64포로병원 장교 병동이었다. 모든 통신 정보와 지령은 일단 장교병동에 집중되었다가 분배되었다. 외부로 보낼 통신을 가진 포로들은 환자로 가장하여 입원하였으며, 퇴원하는 환자들이 그것을 받아 각 수용소에 전달하였다.

또한 공산군 총사령부는 거제도 포로와 판문점 대표들 간의 공동 노력을 조정하기 위한 통신 방법으로서 [첩보부]와 [유격지도부]를 이용하였다. 유격지도부는 통신을 전달할 급사를 파견하였고, 첩보부는 10∼12명의 장교와 하사관으로 편성된 공작대를 내보냈다. 이 공작대는 소련제 휴대용 무전 수신기를 갖고 구역 간 통신 연락을 담당하였다. 이 두 기관은 포로들의 통신을 그들의 총사령부에 전달하는 일도 수행하였다.그러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북한으로 연락하는 통신은 어떠한 경로를 밟았던가? 이는 남한의 공산 간첩망을 조종하고 있는 첩보부의 비밀정보대에서 관장하였다. 이 공작대원들은 피란민으로 가장하여 수용소 부근의 민간 부락이나 피란민 부락에 잠입했다.
그들은 포로작업대가 수용소 밖으로 나오면서 약속된 장소에 투하해 놓은 통신문을 북으로 보내고, 또 같은 방법으로 북의 지령문을 포로들에게 전달하는 통신 수단을 주로 썼다.

특별공작대의 암약이 시작되자 공산측에서는 거제도 포로 전체를 지휘할 우두머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목적으로 밀파된 자가 북조선노동당의 부위원장 감투를 쓰고 있던 박상현이라는 자였다. 그는 전선에서 계획적으로 포로가 되어 1951년 11월경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들어오게 되었다.무명 전사로서 위장하여 제77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박상현은 해방동맹의 조직을 인수하여 각 수용소의 세포 조직을 재점검, 정비 확대하고 일사불란한 지휘 계통을 확립했다. 따라서 그동안 포로 대표였던 이학구는 명목상의 대표가 되고 모든 실권은 박상현에게로 넘어갔다. 이리하여 특별공작대와 해방동맹은 북한군 총사령부에서 내리는 지령에 의해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도록 조직의 정비를 완료했던 것이다. 이후 박상현은 수용소장 돗드 준장 납치사건 등 온갖 폭동사건을 현장에서 조종하였다. 그러나 그후 그는 이학구 등과 더불어 폭동의 주모자로서 수용소 당국에 체포되었다. 분리 수용된 그는 밀파되어 온 최후 목표가 달성되기 전에 수용소 내의 조직이 와해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북에서 받은 지령, 포로 조직, 투쟁 계획과 운영 방법, 남일의 지령 등 일체의 내용을 스스로 폭로했다. 그는 그후 또다시 변절하여 포로 송환 때 북한으로 가서 이학구와 더불어 환대를 받고 건설사단장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얼마 후 여러 가지 죄명을 뒤집어 쓴 끝에 숙청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심사에 대한 항거폭동(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휴전 회담에서 포로 문제가 논의될 때 가장 격렬하게 대립되고 또 오랫동안 쟁점이 되었던 점은 '자원송환' 과 '강제송환'이었다. 자원송환은 포로 본인의 의사를 물어 송환 여부를 결정케 하는 것으로서 이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유엔군측에서도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공산군측에서도 궁금하게 여기던 사항이었다. 따라서 공산군측 대표는 북한 및 중국으로 송환되기를 거부하는 포로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가를 알고자 포로들을 심사한 다음 그 포로 수를 제시하라고 유엔군측에 요구했다. 그런데 이처럼 송환 여부를 알고자 그 심사 실시를 인정하고서도 공산군측은 포로들에게 분류심사를 거부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남일이 바로 그 주모자로서 그는 회담 장소에서는 송환 거부 포로 숫자를 제시하라고 유엔군 측에 요구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제도의 박상현에게 송환 심사를 거부하라고 지령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주장대로 강제송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친공포로들은 포로 명부 제출을 거부하는 동시에 송환 심사에도 응하지 않도록 단단히 지시를 받고 있었다.

심사를 실시하지 못한 구역 중에는 제62구역이 있었다. 여기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완전히 통제를 하고 '전원이 북한으로의 귀환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심사는 시간 낭비'라고 선언하면서 유엔군측 심사관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엔군측은 심사를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서 실력 행사를 계획하였다. 이 구역에는 대부분 서울 출신의 의용군들이 있었으며 그중 절반이 대학 재학생으로서 사상적으로는 완전한 적색분자의 친공 수용소였다. 포로수용소 당국도 이런 형편을 알고 있었으므로 심사반은 신중한 계획을 세워 무장 병력의 특별 엄호하에 집단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구역을 4분하여 격리시키고 각 소구역별로 심사를 실시키로 하였다.
 
그래서 1952년 2월 18일, 새벽 2시부터 수용소 내의 통행이 금지되고 날이 밝을 무렵에는 심사반과 함께 착검한 미 제25사단 제27연대 제3대대 병력이 수용소 내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막상 심사를 하려고 수용소에 들어가자 포로들은 미리 준비해두고 있던 몽둥이, 도끼, 삽, 곡괭이 자루, 칼, 죽창, 천막지주 등을 휘두르며 저항하였다. 그리고 1,000∼1,500명의 포로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경비병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되자 양측은 격돌하게 되었고, 수용소 안은 일대 격전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미군들은 처음에는 공포탄을 발사하였으나 포로들이 달려들자 마침내는 발포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폭동은 진압되었으나 이 사고로 55명의 포로가 즉사하고 162명이 부상당했으며 부상자 중에서 22명은 병원에서 죽었다. 미군의 사상은 사망자 1명, 부상자 38명이었다.이 사건으로 수용소장인 피츠랄드 대령은 부사령관으로 격하되고 2월 20일 새로운 사령관으로 돗드(Francis T. Dodd) 준장이 부임하였다. 또 이 사건에 대해 미 공간사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치른 대가는 컸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인명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오직 목적 달성만이 문제였다. 결국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미군은 철수했고 이 구역은 다시 심사하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다.이 사건은 공산측의 선전 자료가 되어 1952년 3월 초순 판문점에서는 항의 소동이 일어났다. 유엔군측은, 민간인 억류자 심사는 한국의 내정 문제이며 휴전회담의 범위 밖이라고 하여 곤경을 모면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관이 수용소장을 경질하고, 제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에게 '자체 계획에 의하여 포로를 철저히 통제하라'고 지시했던 사실을 보면,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 대단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수용소 내의 지휘 계통을 확립하고 이런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포로들의 소동은 전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반공포로 학살사건(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1951년 8월 말까지 거제도와 부산에서는 포로들 간에도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특히 거제도는 친공포로들의 폭력 행사로 더욱 살벌해지고 있었다. 양쪽은 수용소의 각 구역 내에서 자기 편의 인원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폭력이 횡행했으며 특히 친공계열이 우세한 곳에서는 매일 인민재판이 열렸다. 비록 반공주의자들이 다수인 경우에도 친공포로들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핵심 공산주의자들은 조직이 잘 되고 계획된 방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친공포로들이 주도한 반공포로 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은 1951년 9월 17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날 밤 제77수용소에 있던 해방동맹 본부에서는 비밀리에 대원들을 모아놓고,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이 대공세를 취하여 부산이 벌써 북한 공산군 수중에 들어 왔으며, 그 중 선봉대로서 1개 대대가 거제도에 상륙하여 포로들을 해방시키려고 전진 중에 있다." 고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 말로 그들을 현혹시켰다. 그리고 거제도에 상륙할 그 선봉부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투쟁 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 투쟁 실적이란 것이 '반동분자들을 색출하여 처단'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지령과 선전 선동은 즉각적으로 모든 친공포로들을 자극함으로써 그중 일부는 미치광이가 되어 수용소마다 반공포로들을 찾아내어 운동장으로 끌어냈다. 그리고는 형식적인 소위 인민재판을 한 후 즉석에서 타살하였다. 각 수용소에서는 10명 내지 30명씩의 반공포로들이 무참하게 학살 당함으로써 전 수용소에서 희생된 숫자는 300명에 달했다.

9·17사건이라 불리는 이 폭동은 9월 20일까지 계속되어 각수용소에는 인공기가 나부끼고 거제도가 마치 공산군의 병영이라도 된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다만 우익계가 장악한 포로수용소에서는 이와 같은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좌익계가 열세하여 폭동을 일으키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이 사건은 좌익 친공포로들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우익 반공포로들에게는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더욱 공고한 단결을 가져오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도 포로수용소 당국은 종전과 다름없이 철조망 밖에서 감시만 할 뿐이었다. 특히 밤에는 친공포로들이 천막 안에서 반공포로를 상대로 사형(私刑)을 가하거나 살해를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살해를 할 때도 특급이라 하여 돌로 머리를 쪼아서 타살하고, 1급은 곤봉 500대, 2급은 400대, 3급은 300대를 치는데 대개 30대 정도에서 절명하였다고 한다. 시체는 솜으로 입을 틀어 막은 다음 변소 또는 수용소내 땅에 매장하거나 때로는 철조망밖에 버리기도 했다.

이런 중에서도 그해 12월 23일 밤에 제73구역에서는 150명의 친공포로들이 성탄절 축하 준비를 하고 있던 반공포로 60명을 습격, 난타하여 한 명이 죽고, 32명이 중경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수용소 내에서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세력 다툼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으며, 언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는 긴장된 날들이 계속되었다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격돌(거제포로수용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http://www.pow.or.kr)

1952년초 친공포로의 송환 분류 심사 거부로 일어난 2.18 폭동이 진압되고 나서도 각 친공 수용소에서는 밤마다 반공포로들이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타살되고 있었다.이 해 3월 16일 오후에는 친공포로 일색인 제95구역에서 약 50명의 반공포로들이 결사적으로 탈출하여 철조망 쪽으로 달려 나왔다.
친공포로들은 이들을 향하여 돌을 던졌다. 사지를 탈출하려는 포로들을 국군 감시병들이 보호했고, 수용소 소장 돗드 준장이 현장에 나타났다. 소장의 명령으로 수용소 정문이 열리자 사지를 빠져나온 반공포로들은 수용소장에게 제92, 95구역의 수용소를 해산시키고 우익계 포로들을 구출하라고 간청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95수용소 안에는 우리와 같은 동지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 중으로 나오지 못하면 다 죽게 된다. 나오다가 잡힌 사람도 많이 있다. 그리고 놈들은 사람을 죽여서 그 피로 깃발을 만든다. 저 지붕 위에 있는 인공기를 봐라."
95수용소에 걸려 있는 깃발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이 물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육안으로도 알 수가 있었다. 빛깔은 자색으로 변색되었고, 기폭이 뻣뻣해져서 바람에 잘 나부끼지도 않았다.

반공포로들의 탈출을 목도한 반공청년단에서는 긴급회의를 열고 다음 날인 17일에 반공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 이를 우익계 수용소인 제71, 72, 73, 74. 81, 82, 83, 84, 91, 93, 94, 96 등 각 구역에 통보했다. 반공 총궐기대회는 비폭력으로 각 수용소 안에 태극기를 걸고 각종 구호를 외치며 인접해 있는 좌익계 수용소를 위압한다는 단조로운 시위였다. 그리고 제93구역에서는 제92, 95구역 등 좌익계 수용소에 대하여도 적극적인 시위를 하기 위해 국군 제33경비대대 소속인 제5중대장의 협조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17일 아침 각 수용소에서는 하늘 높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목이 터지도록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오후에는 계획대로 제93구역을 비롯한 제91, 94, 96구역에서 반공 시위를 감행했는데 이 때에는 제5경비중대장 강대위가 지휘하는 소대병력이 이들을 엄호하고 있었다.시위 행진부대는 친공 제92구역 앞길을 지나면서 구호를 제창했다. 이 때 제92구역에서는 시위부대에 대해 투석공격을 시작했다. 시위부대는 많은 인원이 부상을 입었으나 대항은 하지 않고 그대로 전진하였다. 그러다가 참다못한 강대위가 권총을 뽑아 사격 신호를 내렸다. 사방의 국군 감시대에서는 일제히 공중에다 위협사격을 가했다. 그래도 친공포로들은 계속 돌을 던졌다. 총성 때문에 미군 감시병들까지 출동했으나 그들은 가세하지 않았다. 총에는 당할 수 없었던지 친공포로들의 투석이 줄어들어 멈추자 사격도 멈췄다. 우익 시위부대들은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각 수용소로 돌아갔다. 수용소 내로 들어가서도 밤새도록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는 전체 우익 수용소에서 반공 총궐기대회의 명목 아래 18일에도 계속되었다.

17일의 충돌로 친공 제92구역소의 희생자는 30여명 이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병원으로 실려갈 정도의 중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경비대에게. 사격을 할 수 있는 구실을 주고 도전을 가해. 왔으므로 지금껏 참아온 울분을 응징한 것이라고. 우익계 포로들은 생각하였다. 이런 시위는. 29일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좌익계 수용소인 제76, 77, 78구역에서도. 우익과 맞서서 또다른 시위를 벌이고, 수용소. 벽과 철조망에 삐라와 플래카드를 게시하였다.. 양쪽이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포로들의 시위로 좌우익간의 충돌이 우려되자 한·미경비대는 비상 경계에 들어갔다. 이때 제77구역 내에는 우익계 포로 약 160명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탈출 포로의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미군 당국은 한발짝도 수용소 안에 들어가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분명 학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제95구역은 이후에도 악질 친공포로의 소굴로서 포로수용소 당국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었으며 한국군 경비대와도 충돌을 일으켰다. 이 구역은 국군 제33경비대대 제5중대 경비구역이었는데, 1952년 4월 10일에도 경비병과 포로들 간의 욕설이 빌미가 되어 가벼운 총격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미 경비병과 포로들 간에 충돌이 발생하여 한국군 경비대측에서는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미군 대위 1명이 부상을 입는 결과를 빚었다. 포로측은 30명이 피살되고 80명이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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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사고지를 보기위해 차로 이동을 했는데, 차를 세울만한 곳을 찾다가 그냥 길있는대로 올라왔더니 적상산성이다.

그냥 돌 쌓아 벽을 만든걸 보니 이게 산성이구나 싶다.

 

 

 

길을 따라 오면 안국사 주차장이 있는데, 나비들이 무지 많다. 사진을 찍으니 표가 잘 나질 않는데, 검정콜 흐트려 놓은것 같다. 여하튼 검정콩처럼 보이는게 다 나비다

 

 

 

 

 

 

직지사처럼 작은 불상드이 양쪽에 좍~~~~ 가만보니 동자승이 아니다. 직지사는 동자승이었는데

 

 

 

 

 

 

여긴 찻집인줄 알고 들어가 보니ㅠ세계 각국의 불상을 모아 놓았다. 지금보니 박물관이라고 적혀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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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와인동굴에서 나오니 허전하다 그래서 안내하는 사람이 더 올라가면 전망대 갈수있고, 볼게 많다기에 올라기기 시작~~

먼저 적상호가 보인다. 차를 타면 적상호를 한바퀴 돌고 나서 전망대로 갈 수 있다. 드라이브코스로는 짱인듯

 

 

 

 

 

적상산 전망대를 올라가면 정말~~ 세상이 발 아래에 있다.

 

여긴 방금 가봤던 머루와인동굴... 확대를 해도 이렇게 귀여운 모형같다.

 

 

 

전망대를 한바퀴 돌면서 찍으면 밑을 찍으면 비행기에서 대륙을 찍는것처럼 모든게 아기자기한 모형같고, 위성에서 찍는 실사같다. 우와신남 동글이

속이 뻥 뚤리는 느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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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코에 들어서니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두리번 거리는데,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케익들~~~

맛있어보인다기 보다 화려해서 발길이 향한다.

 

 

 

 

 

대구에 먹을거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대구 10대 음식 여기서 동인동 찜갈비 빼고 다 먹어봤네, 소고기는 못먹는 지라 시도도 안해봤는데, 따로국밥은 소고기로 했음에도 먹었다. 워낙 몸이 안좋아서 먹어야 된다고 해서....

 

 

음식 모형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간다

 

 

 

 

 

슈가케이크 하는 곳이 한군데가 아니네~~ 여기 또 있네
여긴 인형과 명품가방들이 있다...

 

 

 

 

 

세계 각국의 유명 음식이 있기도 했는데, 돼지족발에 와인~~뭐 그렇게 만든 거라는데, 사촌동생이 통통한 손으로 족 모양을 만드는데, 비슷하다.눈물

 

 

열심히 찍는 이모덕에 이렇게 사진도 건지네...떡은 정말 맛있어 보인다.

 

 

 

 

 

모형인지 아닌지 제일 말이 많았던 수박!!!! 이모와 사촌동생 나까지.. 만저봐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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