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바로 내려와서 먹은 아침
급하게 먹자마자 미자언니 성화에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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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폴 포트 치하에서 폴 포트가 지식인, 승려, 교사 등을 소멸되어야 할 존재로 규정해서 그들을 학살했다.
학살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자는 맹세로 해골과 뼈를 모아 기념물로 보관하고 있다.
씨엡립 한 곳에 있는게 아니라 도시마다 있단다. 그 도시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뼈를 모아서,
폴 포트 정권이 끝난지 30년이 되었지만 캄보디아가 빈민국인 이유가 지식인들의 학살로 교육할수 있는 사람이 없어 문맹율이 높고,
의사가 없어 의료기술도 형편없다. 얼마전에 맹장수술을 자력으로 성공했다고 하니,,
이나라 국민들이 모두 하고자하는 의지가 없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큰 단점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학살 때의 충격으로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캄보디아가 원래부터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 625때 우리보다 잘 살아서 우리를 원조해주던 나라다.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던 건물인데, 용도가 뭔지 모르겠다.
흰색의 탑(?)에 해골과 뼈를 모아두었다. 그 옆에 폴 포트사진과 학살장면의 사진과 그림이 있다.
두개골이 흰색과 노란색이 있는데, 노란색은 아이를 낳은 여자의 것이란다.
영양분이 태아에게 가서 뼈가 약해져 노란색을 띈다고 한다.
입구의 왼쪽에 있는 건물로 사원이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는데,
여기에서 미친 승려들이 많단다. 원혼들이 너무 많아서 감당을 못해 미쳤단다.
사원안에 불상
감옥으로 쓰였던 건물이란다. 지금은 페이트를 칠해서 깨끗한데, 당시에 벽면에 피가 낭자했단다.
영화 때문에 익숙한 이름 킬링필드, 크레르 루주의 집권기인 1975~79년에 전국토가 죽음의 들판이 됐던 사건,
당시에 처형 및 학살된 사람은 무려 2백만명(당시 전체인구의 1/4).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주는 마오이즘(모택동주의)를 신봉하던 급진적인 공산당 집단으롱 부패한 론놀 정권에 대항.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폴 포트가 크메르 루주를 이끄면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세력을 확장시켜나간다.
결국 1975년 4월에 프놈펜이 크메르 루주에 넘어감으로서 캄보디아는 공산화가 되었다.
집권한 폴 포트는 반대인사, 지식인, 승려, 전임 정권과 미국에 협력한 10만여 명에 대한 가혹한 처형을 시작한데다
현동농장식 자급자족을 목표로 심각하게 노동력을 착취해 기아과 질병으로 70만 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당시 폴 포트의 병사들은 15세 안팎의 소년들로 순진한 영혼들이었다. 하지만 폴 포트의 정권에서
이들은 총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 팜 나무 줄기 등을 이용해 처형했다고 한다. (이후 팜나무는 캄보디아에서 킬링나무로도 불리운다.)
크레르 루주 정권이 물러간 뒤 폴 포트의 나어린 병사들은 처벌을 할려고해도 어려 처벌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벌 안 받았다고 해서 잘살고 있는건 아니라고, 철들기 전부터 사람을 죽여서 절반 가량이 미쳤다고 한다.
나머지는 군인이 된 경우가 많은데, 평소에는 얼빠진 사람처럼 있다가 사람 죽일 때는 눈에 살기가 장난이 아니란다.
이 폴포트 병사들이 있어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캄보디아가 지긴했지만 베트남의 피해도 막심했다고,
몇번의 전쟁으로 불구가 된 사람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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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버섯 판매하는 곳에 들러서 설명듣고, 언니랑 나랑은 비싸서 못 사겠다. 하지만 다른분들은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사시더라.
30~40년된 상황버섯과 상황버섯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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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바라이 인공호수
천 이백년 전에 사람손으로 판 호수인데 굉장히 크다.
좁은 곳은 2.2Km 넓은 곳은 8Km의 인공호수다, 동쪽에도 호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말라버렸다고 한다.
현재는 주민들의 유원지로 사용해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 잘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맞은편에 생선,개구리, 닭을 구워파는데 생선과 개구리는 내장을 빼지 않고 그래도 굽는다.
과일도 파는데 일행중 아줌마가 바나나 2송이를 $2주고 사서 2개씩 주셨는데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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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 식당
쌈집이다. 쌈 종류도 많고 반찬도 다 한정식이다.-된장국,강된장,제육볶음도 준다.
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