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역에서 김천역에까지 50분 정도 걸려 도착해서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번호 볼 필요없다고 버스에 붙여진 팻말보고 가면 된단다.
버스에 직지사라고 적혀져 있고 금액은 1200원 종점이 직지사라니 그냥 계속 타고 있다가 내리면 된다.
게다가 김천역에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20분 정도
버스정류장서 내려 조금 올라오다 보니 직지사공원이 있고, 우리는 직지사로 바로 갔다.
직지사 입구
직지사 입장권
직지사(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동)
신라 눌지왕2년(서기 418)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직지'라는 명칭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고려태조 19년(936) 능여조사가 중창하여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었다.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중수하여 조선 8대 사찰 중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시켰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호국성사 사명대사가 입산한 곳이기도 하다.
이 다리 건너에 보이는 건물이 관광상품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구경하고 반야심경반지 샀다. 너무 맘에 든다.
천왕문
사천왕상(지국천왕 증장천왕)
사천왕상(광목천왕 다문천왕)
직지사 대웅전과 양쪽에 있는 삼층석탑
대웅전
신라시대 대웅전의 규모에 대해서는 미상이나 고려 이후 조선 초기,적어도 정종대까지는 2층 5간의 특수한 건물이었던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사적기에 대웅대 광명전이라 하였는데 명칭부터 특이하여 혹시 당시에는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을 동시에 봉안했는지 알 수 없다. 대웅전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사승 인수,명례 등에 의하여 중창되었다. 현 건물은 이로부터 150여 년 후인 영조 11년(1735) 중건되었으며 당시 중건에는 주지 수변화상,전 주지 설운 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써 이룩 되었다. 그 관계자는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개와공,도감,그리고 화사,총찰도감,도와도감등 50여 명의 산중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고 있는데,이 명단은 중창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연목 교체 및 기와를 번와(1969.3.1~1970.11.30) 할 때 확인 되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대웅전의 주위 석축 및 축대를 새로 조성(1973.4.10~1975.6.20)하여 필역 하였다. 다시 녹원 화상에 의하여 재차 연목 및 기와가 번와(1979.10.25~1980.1.14)되었고, 1980년 8월에는 부분적으로 고색금단청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은 경북유형문화재 제 215호였는데,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되었다.
직지사 대웅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606호)
이 두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이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과 함께 워래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의 도처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인데, 1974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탑들은 대체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이중기단이 아니라 단층기단인 것이 특이하다. 기단에는 면마다 안기둥과 귀기둥을 돋을새김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었는데, 몸 돌에는 다른 장식 없이 귀기둥 모양만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수평을 이룬 처마선 아래로 1층부터 차례로 5 5 4 단의 처마받침을 두었으며, 1층 지붕돌에는 추녀 끝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상륜부는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후불탱화
영조 20년에 조성되었다. 중앙에 석가,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약사 불회도(藥師佛會圖),아미타불회도(阿彌陀會圖) 3점은 모두 보물 670호로 지정되었다. 내부 또한 아름다운 채색벽화로 가득하다.
관음전
일명 원통전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다. 협시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있으나 이들은 대부분 후불탱화로 나타난다. 대승불교가 낳은 수많은 보살중에서 관세음보살 만큼 대중의 신앙대상이 된 보살도 드물다. 모든 중생의 애환을 대자대비로 거두어 주는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응신으로 화현하여 중생을 구제한다.
관세음보살
응진전
고려 태조 14년(931) 능여 대사가 창건 하였으나, 임진왜란에 전소되었던 것을 효종 7년(1656) 관음전으로 중건 하였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개액 하였다. 이건물은 구후 주지 녹원 화상에 의하여 중수 되었는데 이때는 기와 번와,단청 및 석조 축대까지 신축(1970.3.1~1971.11.30)되었다.
응진전 내부 사진
비로전
고려 태조때 능여 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진 비로전은 천불상을 모시고 있으므로 천불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떄 병화를 모면한 3동의 건물중 하나로 근년에 개수하였다.정면 7간,측면 3간의 맞배지붕이며 크기는 53평에 금단청을 하였다. 천불상도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과거,현재,미래의 삼천불 중 현겁 천불을 모신 것으로 1992년 개금 불사가 완료되었다.또한 비로전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있다
천불상
비로전 내의 천불상은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 불상의 재료는 경주 특산인 옥돌을 사용하였는데 ,그 모습은 사방의 모든 부처님을 모셔놓은 듯 장엄하다.
비로전 앞에 석등 안에 이렇게 작은 불상이 있다. 신기해서 찍었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607호)
이 탑은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크기나 양식, 세부가 모두 같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동일한 3기의 석탑이 한 곳에 서 있는 경우는 그밖의 예가 남아 있지 않아서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약사전
동방유리광정토를 표출시킨 법당으로 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신앙이 사후의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에 약사여래신앙은 현실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약사여래는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는 힘을 갖고 있는 부처로 대중의 신앙대상이 되었다. 왼손에는 약사여래의 특징적 모습인 약합을 들고 있다.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물 제1186호)
이 탑은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석탑으로, 원래 구미시 선산읍 원동 낙동강변 강락사터로 전해지는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1968년 경북 선산군 군청 앞뜰로 옮겼다가 1980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으며,
이때 상륜부를 추정 복원하였다.
탑의 기단(용어가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다.)에 작은 불상이 있기에 찍었다.
청풍료
주지 녹원화상에 의하여 신축(1966.4.1~1971.11.30)되었는 데, 형태는 팔작지붕이면서 귀틀을 낸ㄱ자형이다.본래는 7간이었으나 현재는 정면9간,측면5간의 금단청 건물이며 크기는 총 92.76평이다. 이건물은 현재 본사의 성보유물전시관인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청풍료 나가는 문에 있던 얼굴없는 불상
범종각
직지사 내에 찻집이 몇 군데 있었던 것 같은데, 나오는 길에 덥기도 하고 너무 빨리 봐서 시간이 남기에 찻집에 들어가서 찍은 메뉴판 앞과 뒤
얼음 있는게 미경이가 시킨 대추차(걸죽하던데,,) 그리고 난 따뜻한 약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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