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나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있는 세계도자기박물관!!
입장권(1000원)
밖에서도 이 도자기는 보이더라 너무 크고 화려해서 궁금했는데
입구에서 차례대로 찍은 사진인데 너무 많아서 뺀 것도 많은데, 더 뺄 수가 없어서 되는 한 올린다.
세계 각국 도자기 시작!!!
독일 마이센
1709년 독일 마이센에서 최초로 중국식 백색자기가 개발되었다. 마이센은 유럽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기라는
의미와 그 작품성과 소장 가치면에서 우럽에서 최고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폴란드의 왕 아우구스트 1세는 마이센에 도자기 공장을 차리고 유럽자기 최초의 개발자인 도공 뵈트거를
성에 가둬넣고 자기를 제작하도록 하여 자기제조법이 외부에 유출되지 못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도 마이센의 제조비법은 유출된 적이 없어 마이센의 양파문양 등 대표적인 패턴들을
유럽각국에서 모방하였으며, 이후 마이센은 유럽 도예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프랑스 세브르
프랑스는 독일의 마이센만큼 뛰어난 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뱅센에 있는 도자기 공장을 세브르로 옮겨 본격적인
중국식 경질자기 개발에 심형를 기울였다. 도기에 주석을 함유한 연질도기 파이앙스는 프랑스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어온 도자기였으나 리모주 부근에서 고령토층을 발견하면서 백색 자기 개발이 급진전되었다.
세브르 특유의 화려함은 로코코양식의 정수이기도 하며, 세브르는 바탕색으로 특징을 나타냈는데
일명 '세브르 청색'으로 불리는 청금색의 독자적인 색채처리가 뛰어나다.
영국 로열우스터
1751년 로열우스터는 위고니아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닥터윌이라는 사람이 영국 중심부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시작하였고, 마을 이름이 Worcester이다. 1788년 그해 왕이었던 조지 3세와 그의 왕비 샤르롯드가 고장을 방문하였고, 그이후에 오열우스터 라는 이름을 갖기 시작하였다. 우스터라는 마으른 항구를 지녔기 때문에 물건을 배로 운송하기가 쉬웠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영국 황실엣는 로열우스터 자기를 사용하고 있다.
덴마크 로열 코펜하겐
초기 코펜하겐은 마이센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1858년에 왕에게 로열 칭호를 받아 로열 코펜하겐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덴마크왕 크리스티안이 러시아 여왕 예카테리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코펜하겐에 주문하여 제작된 야생식물이 수작업으로 그려진 프로라 다니카 시리즈는 덴마크 도자기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코펜하겐의 특징은 코발트를 화려하게 사용하는 것이며, 하얀 바탕에 푸른빛의 꽃무늬가 그려진 블루 플리티드는
로엘 코펜하겐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한다.
콜포트 도자기
스타포드 세어에 있는 콜포트공장은 1790년에 존 로즈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후에 콜리와 난트가를 인수하여 회사의 규모를 확장하고 공장은 지금의 장소인 스톡 온 트렌트로 옮겼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경질과 연질의 중간 정도의 제품을 만들었으나 점차 흰색의
본 차이나를 만들기에 이른다. 특징으로는 표면을 풍부한 꽃 문양으로 장식하고 이마리 색채를 사용한 것이다.
레녹스 도자기
레녹스의 세라믹 아트 회사는 1889년에 문을 연다.
처음부터 레녹스의 스타일은 다른 자기들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조직면에서도 공장보다는 아트 스튜디오를 먼저 세워 단순한 제품이 아닌 상아빛의 광택 나는 아트웨어를 선보였다. 창업자인 월터 스콧 레녹스는 질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회사의 비젼으로 제시했다. 오늘날, 레녹스는 아름다운 테이블 웨어, 기프트웨어(특히 인형)로서의 명성과 기대를 받고 있다.
로열 크라운 더비 도자기
더비도요는 1745년 존 히드와 윌리엄 듀스버리가 설립했다. 1775년 듀스버리가 연 런던의 한 전시장에서
조지 3세는 그에게 황실용 자기를 납품할 수 있는 칙허장을 주었다. 백 스탬프에 왕관을 새겨 넣을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다. 이것이 크라운 더비의 탄생이었다. 크라운 더비는 이내 영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로열 크라운 더비는 1876년 오스카 스턴 로드에
새 더비 공장이 문을 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향상된 도금 기법과 화려한 색상은 전통적인 더비 스타일에 덧붙여져 새로운 기법이 창출되었다. 그리하여 1890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황실을 위한 도기 공장'이라는 영예로운 칙허를 추가하면서 로열 크라운 더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앤슬리 도자기
앤슬리는 영국인이 만든 영국적인 포셀린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도자기 마니아 앤슬리는 1775년에 가마를 걸고 흙을 밎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취미로 도자기를 구울 만큼 도자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수입품 도자기를 보고 감탄한 존 앤슬리는 1784년경부터 '최상의 것을 최상의 사람들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수한 도공들을 양성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귀족들이 흡족할 만한 제품들을 생산해냈다.
헝가리 헤렌드
헝가리는 헤렌드에 자기제조소를 설립하면서 유럽의 로열 패밀리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1851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중국양식을 따른 헤렌드 제품이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국제적 명성을 쌓게 되었다. 원저성에서 사용할 디너세트를 주문받아 제작된 꽃과 나비가 주조를
이룬 패턴은 지금까지 이어 내려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꽃과 과일, 새는 헤린드 제품의 주요 소재이며,
예리한 칼로 섬세하게 도려내는 투각법과 점토를 실타래처럼 마들어 형태를 짜 올라가는 망세공법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리챠드 지노리
리챠드 지노리는 1735년 마르케제 카를로 지노리에 의해 세워진 도치아 도요가 그 효시이며, 이탈리아에서
본 차이나를 출현시켜 도자기 산업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1896년 리챠드사와 합병하면서 '리챠드 지노리'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앤티크 시장에서는 아직도 도치아로 호칭되고 있다. 리챠드 지노리의 특징은 중국자기의 원료와 독일
제조기법을 받아들여 이탈리아적 예술성을 부여하고 있다. 지노리의 대표적인 패턴 '이탈리안 후르츠'시리즈는
금색과 푸른색의 띠, 과일과 작은 꽃들로 아름답게 디자인디어 있으며,
도치아 초창기부터 제작도어 호평을 받아온 아이템이다.
르네랄리크
프랑스 샹파뉴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화가, 조각가, 보석 디자이너였으며, 유리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유리 공예가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일제히 유행한 장식양식 '아르 누보'를 이끌었으며 세기말의 천재로 불릴 만큼 뛰어난 예술가이자 장인이다.
1885년 공방을 열어 '랄리크'라느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1백1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랄리크는 크리스탈, 도자기, 액세서리 외에 향수 가죽의류 등도 내놓고 있다.
에밀갈레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유리그릇과 도기를 제작하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 자맀다. 뒤에 독일의 마이젠탈에서 유리기술을 배우고 파리에서 고대 현대의 유리, 칠보, 조옥에 관한 연구를 한 후 낭시로 돌아와 공장을 세우고, 유리그릇, 가구, 도기 등을 제작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가 제작한 유리그릇의 특색은 중국의 후연호나 고대의 카메오에서 암시를 얻어 불투명 또는 반투명의 색유리에 층을 깊게 혹은 얕게 커트하여 색의 효과를 잘 나타나게 장식한데 있다. 모티브로는 식물이나 곤충을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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